화합과 애향심으로 하나 된 전형적 농촌마을
화합과 애향심으로 하나 된 전형적 농촌마을
  • 김규식
  • 승인 2015.12.10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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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면 문등1리 회석촌
비옥한 토양에 높은 일교차로 최상의 복숭아 재배
경로당 리모델링, 장마철 토사유출 등 숙원사업

▲ 도로 건너편에서 바라본 문등1리 마을전경
▲ 도로 건너편에서 바라본 문등1리 마을전경



산업단지와 공장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금왕, 대소, 삼성 지역과는 달리 소이면은 그야말로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은 시골풍경이 살아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그중에서도 이번에 기자의 발길이 머문 문등1리는 전체 가구수가 28세대에 불과해 소이면 내에서도 작은 마을이다. 농민들의 살림도 농사도, 사는 모습도 비슷비슷한 전통적인 공동체 마을이다. 주로 벼농사와 고추, 복숭아, 사과, 수박 등 과수농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복숭아는 비옥한 토양과 높은 일교차로 인해 당도가 높고 맛이 좋아 우수한 상품성을 자랑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가뭄이 적고 태풍이 없어 농사가 잘되는 지역이며 비가와도 물 빠짐이 좋아 하루만 지나도 물이 빠지는 천혜의 장점이 있다.

문등1리는 소이면 소재지로부터 동쪽으로 4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문등2리 무덤실, 남쪽으로는 중동리, 서북쪽으로는 후미리와 접하고 있다. 마을 뒤로 월포산이 있고 마을앞에 월포보가 있으며 음성천이 흐르고 있다.


괴산 불정면에서 소이면으로 편입
▲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박태환과 함께 활약한 피승엽씨가 아버지 명의로 기증한 마을 표지석.
▲ 국가대표 수영선수로 박태환과 함께 활약한 피승엽씨가 아버지 명의로 기증한 마을 표지석.

문등리는 본래 괴산군 불정면 소속으로 옛날 큰 무덤이 있어 무덤실 또는 문등곡이라 했으며 1973년 행정구역 개편때 소이면에 편입됐다.

과거 '회석촌'이라고도 불리던 이 마을은 뒷산에서 백회가 생산돼 횟돌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하며 마을이름이 횟돌모랭이라는 명칭으로 사용된 적도 있다고 한다. 현재는 폐광되었지만 예전부터 석산이 있었고 그 석산에서 형석, 석회광 등으로 추정되는 돌이 생산됐으며 지금도 광맥은 살아있다고 전한다.

고령에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많지만 문휘택 이장이나 박찬명 새마을지도자 같은 젊은 일꾼들이 헌신적으로 마을일에 나서 어려운 일 없이 순탄하게 마을을 이끌어가고 있다.

귀농하는 젊은 인구는 아직 없다는 점이 다소 아쉽긴 하지만 집안 사정을 속속들이 다 아는 처지라 주민들간 화합과 서로 돕는 분위기는 음성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작은 마을이지만 주민화합만큼은 최고입니다. 열성적으로 함께해주는 젊은 사람들도 있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어르신들도 계셔서 주민 숙원사업도 하나둘씩 해결해나가고 있습니다.”


주민숙원사업 차근차근 해결
▲ 마을회관 비가림 시설공사에 한창인 이장, 새마을지도자, 노인회장.
▲ 마을회관 비가림 시설공사에 한창인 이장, 새마을지도자, 노인회장.
올해로 이장취임 2년째를 맞는 문 이장은 마을에 대한 애정과 헌신성이 각별하다.

운동기구와 어르신들 신발장에 비가림 시설이 없어 비에 젖는 것을 안타까워하다 면과 지인들을 쫓아다니며 새롭게 시설을 올렸다.

주민숙원사업으로는 지은 지 15년이 넘은 낡은 경로당을 리모델링하는 사업이 있으며 해마다 장마철에 토사가 흘러내리는 광산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하다. 매년 15톤 트럭 50대 정도 분량의 토사가 흘러내려 마을차원에서 면과 함께 제거에 나서고 있다.

또한 지난해부터는 면에서 지원을 받아 마을에 눈치우는 제설장비를 설치 폭설에도 통행에 불편함이 없도록 조치하고 있다.

박 새마을지도자는 “마을마다 여러 곳에서 신청했는데 우리 마을에 우선적으로 배정이 돼 추진한 당사자로서는 큰 보람을 느끼게 된다. 마을일을 하면서 힘들다는 것보다는 보람이 훨씬 더 커서 오래하면서도 기쁘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농사 말고도 마을일은 소소하게 여러 가지가 발생한다. 감투만 쓰고 내일처럼 일을 보지 않는다면 주민들의 불편함이나 어려움은 고스란히 숙제처럼 남게 될 터. 젊은 두 사람의 자발적인 노력과 마을일에 대한 헌신은 그래서 더욱 가치를 발한다.

박종혜 노인회장은 문 이장과 박 지도자를 향해 “마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일꾼들”이라며 어르신 공경과 헌신적으로 마을을 해나가는 젊은이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소이면 문등1리는 작은 마을이고 주민수도 적다. 하지만 젊은 마을일꾼은 일꾼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마을을 위한 마음만은 한결같다. 그 마음으로 풍요로운 농촌마을의 모습만큼이나 화합하고 단결하는 마을로서도 그 빛을 더해가고 있다.

우리 문동1리 회석촌 사람들
문 휘택  이장
문 휘택 이장
28가구 가족처럼 지내는 행복한 마을
이마을 토박이인 문 이장은 소이초(49회), 음성중·고를 졸업한 뒤 직장생활 등을 하다가 귀향한지 20년이 됐다. 용인에서 살때는 5년 정도 화훼를 하며 고향에서와는 다른 경험을 해보기도 했다고. 고향에 내려와서는 소득이 좋은 복숭아농사를 3천평 정도 짓고 있다.
마을이 28가구 정도로 작아서 가족 같은 편안함이 있고 사건사고가 없어 좋다는 문 이장은 최현희 여사와 1남1녀를 두고 있다. 마을일은 물론 83세 고령의 아버님을 모시고 살며 어른공경에도 모범을 보여 주민들이 칭찬일색이다.





박 종혜  노인회장
박 종혜 노인회장
2차례 9년간 '이장'으로 봉사
86년부터 4년간, 2004년부터 5년간 이장을 보면서 마을을 이끌었던 박 노인회장은 문 이장과 새마을 지도자 두 일꾼에 대한 칭찬에 열을 올렸다.
용인이 고향인 박 회장은 국정교과서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으며 청주에서도 거주했었다. 30대 중반에 이사와 마을일에 앞장서며 제2의 고향이 됐다. 가뭄이 적고 태풍피해가 없어 농사가 잘되는 천혜의 땅이라며 자랑했다. 남옥란 여사와 2남1녀를 두었으며 세 자녀들은 모두 외지에 나가 경찰, 교사, 법무부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 명자 부녀회장
이 명자 부녀회장
경로당 어르신들 식사대접·말동무 젊은 사람 몫
마을에 독거어르신들이 많은 시골동네의 특성상 경로당에는 '외로움'을 달래러 오시는 어르신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문등1리 부녀회는 어르신들의 점심(어떤 경우는 저녁까지도)을 챙겨드리느라 바쁘다. 봄가을에 한번씩 분리수거물품을 판매해 수익을 만들고 도로에 들깨를 심어 밥지을 때 활용하고 있다. 20여명의 부녀회 회원들이 어르신 공경에 동참하고 있다.
부군인 피동철씨와 1남1녀를 두고 있으며 자녀들은 학업 등의 이유로 타지에 나가있다.






박 찬명 새마을지도자
박 찬명 새마을지도자
8년째 새마을지도자로 궂은일 도맡는 마을일꾼
2009년부터 8년동안 새마을지도자로 마을일에 앞장서고 있는 박 씨는 문 이장을 도와 동네 궂은일, 힘쓰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다. 직업군인 출신으로 전역 후 직장생활을 하다가 연로하신 부모님을 돕기 위해 귀향했다.
처음에는 새벽부터 밤늦도록 하는 농사일들이 힘들었고 월급 없는 생활이 어색하고 답답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단순하게 반복되는 일이 아니라서 좋고 재미있으며 수입도 나쁘지 않다고 한다. 사과, 벼, 수박, 축산 등 많은 농사를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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