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으로 부자 된 동네
새마을운동으로 부자 된 동네
  • 음성자치신문
  • 승인 2017.02.24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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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곡2리(토계울마을)
달토끼가 방아를 찧는 듯한 모습 연상
50년 전 농가소득 140만 원 '신기원'
▲ 마을 입구의 정자와 보호수가 여름에는 노인들의 안식처가 된다.
▲ 마을 입구의 정자와 보호수가 여름에는 노인들의 안식처가 된다.

50년 전 농가소득 140만 원 '신기원'
토계울마을은 궁핍을 벗어나기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한 지도자의 노력과 단합으로 목적을 달성한 마을이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새마을운동을 통하여 환경적 지리적 여건을 극복하고 농가당 평균소득 140만원이라는 신기원을 이룩한 자립마을이다 시적인 감상이 드는 이름을 가진 토계울. 유래가 있는 재미있고 흥미로움을 자아내는 '스토리텔링'이 되는 마을이다.

'스토리텔링' 되는 마을
토계울마을 앞의 하천은 원남의 하당에서 내려오는 물과 음성에서 내려오는 물이 만나서 합쳐지는 합수머리가 있다. 하상 정리 이전에는 현재보다 훨씬 넓었다고 한다. 이곳에 용바위가 있고 합수머리는 광장처럼 넓고 물이 맑아 달토끼가 방아를 찧는 듯한 모습이 물에 비쳤다고 한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토계울'이다.

향토 사학자 박종대 씨는 “토계울에 1500년대까지 배가 들어온 기록이 있다”며 “여기서 부터가 인근내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인근내란 음성과 괴산군 불정이 물길로 통하는 하나의 생활권이었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지명이라는 것이다.

과원 면적 5만여평
다리를 건너 마을에 들어서면 큰 정자나무가 있는 광장과 회관이 있는 광장이 있다.

입구부터가 시원시원한 느낌을 준다. 이는 마을 사람들이 이기심이 적고 공동체적 사상이 공유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웃 간에 화목하고 인심 좋고 나눌 줄 안다는 뜻이다.

이곳은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났을 때 음애 이자 선생이 화를 피해 들어 와 살았던 곳이다. 최근에는 한국 여성 수필문학계의 거목으로 꼽히는 반숙자 씨가 남편과 함께 과수농사 지으며 글을 쓰며 살았다.

지금은 40여호가 주로 과수농사를 지으며 화목하게 살아가고 있다. 복숭아, 사과 등 과수를 주로 하는 과수원 마을이다. 과원 면적은 5만 여평에 이른다.

다리 건설로 '상전벽해'
토계울마을은 음성읍에 인접한 가까운 마을이지만 넓고 큰 하천 때문에 쉽게 음성읍에 접근하지 못하는 불편한 오지였다.

처음에는 돌로 만든 징검다리가 있었고 다음엔 엑스(X)자의 나무기둥 난간 위에 두꺼운 널판을 얹어 놓은 섶다리 형태의 널판 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어른들의 증언은 그 널판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고 전한다. 큰 장마가 올라치면 그 널판을 떼어다가 보관을 하고, 장마가 그치면 다시 설치하는 일을 반복하였다고 한다.

1969년도에 동네 아가씨들의 낭만과 추억이 담긴 출렁다리가 놓여지고 후에 새마을사업으로 콘크리트 다리가 놓여지게 된다. 90년대에 교량이 확장됐고, 최근 4대강정비사업의 일환으로 2014년에 '100년이 갈 다리'가 놓여졌다.

긍즉통으로 가난에서 벗어나
마을 어귀에 있는 돌비석에는 마을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지리적 여건으로 오랫동안 불편함을 겪으며 살아왔던 이들에게 새마을운동은 소원을 풀어주는 기회로 다가왔다.

70년대 초에 새마을운동을 이끌었던 이가 이동우 씨다. 초대 새마을 지도자였던 그의 열정은 유명했다. 당시 음성군의 지원으로 시멘트 다리를 놓게 되면서 자유로운 통행을 이루어내었다. 그로 인해 마을의 농가소득도 늘어나게 되었다.

그의 열정을 칭송하는 송덕비가 마을 어귀에 있다.

마을 연혁비에는 1975년도 농가소득 가구당 140만원 돌파라는 기록도 있다.

대단한 소득이었다. 당시 청주의 택지개발 단지의 단층 양옥집을 200만 원이면 살 수 있었으니, 미루어 짐작이 간다.

새마을운동으로 다리를 놓고 교통의 편리해지며 부촌을 이룬 상징적인 동네가 되었다.

화합하고 나누는 풍족한 마을
이 마을은 노인을 공경하는 손길도 많고 매년 경노잔치와 윷놀이, 온천효도관광을 이어가고 있다. 마을의 재정도 넉넉한 부자 동네다. 2000평의 땅과 현금 3000만원의 마을 기금은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경노당에선 점심 저녁을 모두 해 드리며 화목한 시간을 갖는다. 식사 준비는 당번제로 돌아가면서 젊은이들이 맡아 봉사한다.

파리가 하나 없는 청정마을에 근심거리가 하나 생겼다. 조용하던 마을의 뒤편에 자동차 전용도로가 생기면서 소음 발생이 예상된다. 터널로 통과하기를 주민들은 바라고 있다.
▲ 회관 2층은 회의실과 역사관으로 사용중이고 1층은 경로당으로 사용중이다.
▲ 회관 2층은 회의실과 역사관으로 사용중이고 1층은 경로당으로 사용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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