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삼성 대사리 문해교육 현장을 가다
(르포)삼성 대사리 문해교육 현장을 가다
  • 임요준
  • 승인 2017.09.01 10: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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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막눈 할머니에게 가져다 준 ‘한글 세상’

◀ 삼성면 대사리 마을회관에서 문해교육을 받는 할머니들이 수업을 마치고 기쁜 마음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 삼성면 대사리 마을회관에서 문해교육을 받는 할머니들이 수업을 마치고 기쁜 마음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지난해 7곳에서 시작돼 2년 째 교육 이어져
일기와 시 쓰기로 모든 사람과 소통길 열어
책상과 걸상 필요하고, 노후건물 보수 절실

“다 같이 따라 읽으세요. '썰물', '설날', '씨름'” “'썰물', '설날', '씨름'”

선생님을 따라 한글 읽는 소리가 건물 밖까지 퍼진다. 삼성면 대사리 마을회관 문해교육 현장에서 울려 나오는 할머니들의 책 읽는 소리다.

문해교육지도사이며 음성군평생교육활동가회 이순희 회장의 선창에 이어 할머니들의 따라 읽는 소리가 우렁차다.

지난해 음성군이 성인문해교육 확산 원년으로 지정하고 이곳 마을을 비롯해 관내 7곳에서 문해교육이 2년 째 이어지고 있다.

먹고 사는 것조차 버거운 가난에 찌들었던 우리네 할머니들. 정규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다. 그러기에 우리 글 한글을 배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배움의 시기를 놓치고 한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아온 이들에게 한글을 알고 책 한권을 척척 읽어대는 사람은 '영웅'과도 같다. '내 이름'만이라도 읽고 쓰고 싶은 욕망을 이제야 원 없이 풀어가는 할머니들. 그러기에 배움의 열기는 그 여느 교실 못지않다.

이제는 그 한을 풀고 일기를 쓴다. 누군가에게 편지도 쓴다. 마음에 담아 둔 감성을 시로 표현하기도 한다. 흰머리에 쭈글쭈글 주름 가득 찬 얼굴에 진지함이 드러난다. 흩어진 머리카락과 달리 배움의 눈동자는 반짝거린다.

의욕이 넘쳤을까? 마구 써내려가는 한 할머니를 향해 웃음 섞인 이 회장의 한마디가 쏟아진다. “엄니, 천천히 읽으면서 쓰세요~”

한참 수업이 진행되더니 수업과 거리가 먼 한마디가 흘러나온다.

“비 온다더니 볕이 나네”

“그러게. 밭에 일해야 되는디...” 어쩔수 없는 우리네 농촌 할머니들이다.

이곳에서 최고령자 정순정(89) 할머니는 성인문해학습자대회 편지쓰기에서 구구절절 인생을 그린 내용으로 장려상을 수상했다.

정 할머니는 “10년만 일찍 배울 것인디. 나도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디...”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 할머니의 뒤를 이은 고령자 이종진(88) 할머니는 “자음, 모음이라는 것도 배우고 받침이 있는 글자도 배우닌까 재미난다. 평생 써보지 못한 내 이름을 쓴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며 복받친 마음을 드러냈다.

이곳에서 반장을 맡고 있다는 장영순(80) 할머니는 “소학교(현 초등학교)에서 한글을 배웠지만 자음, 모음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한 글자 한 글자가 자음, 모음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구먼”라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한글이 할머니들로부터 사랑받게 되기까지 이 회장은 숨은 일꾼이다. 밤새 박스종이를 오려가며 만든 자음, 모음, 단어판들이 그에 대한 방증이다.

이 회장은 “뒤늦게 시작한 한글공부지만 여느 학교 못지않은 학교를 만들고 싶다. 평생 학생의 기분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이분들께 학생이라는 걸 느끼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을회관 2층을 마을학교로 만드는 중이다. 창고로 쓰인 이곳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벽화를 그려 넣었다”며 “노후 건물인 탓에 할머니들이 계단 오르내리기가 참 버겁다. 일부 보수공사가 필요하다. 또한 할머니들이 바닥에서 앉는 것을 힘들어 하신다. 학교에 남는 책·걸상이 있다면 후원받고 싶다”고 어려움을 토했다.

“건강이 허락하면 계속 공부를 해 시도 쓰고 편지도 쓰고 싶다”라며 배움의 기쁨에 젖어있는 삼성면 대사리 할머니들의 아름다운 노년의 삶에 박수를 보낸다.

임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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