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대 호 정크아트갤러리 대표
오 대 호 정크아트갤러리 대표
  • 음성자치신문
  • 승인 2017.11.1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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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고철이 가슴 울리는 예술품으로…‘블루오션’ 선구자
▲ 정크아트의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오대호 대표가 새롭게 선보인 움직이는 로봇 앞에서 있다. 우스꽝스럽게 움직이는 로봇이 정크아트의 새 장을 열고 있다.
▲ 정크아트의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오대호 대표가 새롭게 선보인 움직이는 로봇 앞에서 있다. 우스꽝스럽게 움직이는 로봇이 정크아트의 새 장을 열고 있다.


첫 작품 후 6000개 소장, 정크아트 대가로 우뚝
독일, 중국 등 외국 전시 봇물, 세계인 가슴 울려


녹슨 고철을 보면서 어느 누가 움직이는 로봇을 상상하랴. 더 이상 쓸모없는 자동차부품을 보면서 어느 누가 음악이 흐르는 스테레오를 상상하랴. 우연히 외국잡지를 통해 정크아트 존재를 알게 된 오대호(62) 정크아트갤러리 대표. 30여 년 세월 속에 이젠 대한민국을 넘어 정크아트를 대표하는 세계적 작가가 됐다. 끝없는 상상 속에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그의 창작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10년 만에 얻은 귀한 아들

오대호 대표는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28세 때 최연소 경찰서장을 지냈다. 3남5녀 중 장남인 그는 온화하면서도 카리스마 가득한 아버지의 기세를 그대로 빼 닮았단다. 딸만 연이어 둘을 낳고 10년을 기다려 얻은 아들이지만 아버지의 강직함과 어머니의 원리원칙적 정석을 배우며 자랐다. 일찍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노량진초교와 배제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어려서 기계 만지기를 즐겼던 그는 호원대에서 기계공학을, 깊이 있는 예술 활동을 위해 관동대에서 미술과 조소를 전공했다.

엎치락 뒷치락 사업…
음성과 인연

이후 전북 군산에서 조선업을 운영하는 아버지를 따라 군 제대 후 선박을 제조했다. 호주 기술자를 불러 우리나라 최초 요트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때 부인 안은희(62)씨를 만나 딸 하나를 얻었다. 합판공장을 인수하고 사업을 확장했으나 무리한 투자로 회사는 부도를 맞았다. 그의 나이 28세 때다.

거처를 서울로 옮겨 자동차 튜닝사업을 시작했다. 최초로 스쿠프 튜닝을 했지만 불법개조라는 단속이 이어져 이마저 쉽지 않았다. 지인의 도움으로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음성군 삼성면에 플라스틱계란판 제조공장을 설립한 것이다. 그의 나이 35세. 음성과 오 대표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정크아트 첫 발견
사업은 성공적이였다. 공장 직원만도 100명을 넘었다. 하지만 재료를 플라스틱에서 종이로 바꾸라는 정부의 지침에 따라 결국 파산에 이르렀다.

마지막 그의 손에 쥐어진 돈은 단 2000만원 뿐. 몸도 마음도 지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낚시뿐이다. 음성지역의 낚시터를 돌며 지난 과거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일에 대한 기다림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낚시꾼이 버려둔 외국잡지를 펼쳐 보게 된다.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미국 어느 건물 앞에 놓인 조형물을 발견한다. 폐기물 고철로 만든 30억 원짜리 정크아트다. 그 순간 “아, 바로 이거다!” 고철 속에서 보물을 발견한 것이다.

작품활동 시작, 전국적 명성

곧 바로 사업에 착수했다. 남은 돈으로 생극면에 버려진 외양간을 임차했다. 승용차를 처분하고 1톤 중고트럭을 구입했다. 고물상을 돌며 고철 수집에 들어갔다. 드디어 첫 작품이 탄생했다. 1미터 높이의 로봇이 만들어졌다. 이보다 더 감격스러운 날이 있을까? 그날 밤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보고 또 보고, 만지고 또 만져보고...그렇게 밤을 지새웠다. 시작 3개월 만에 20 작품을 만들었다.

기운이 난다. 용기가 솟구친다. 그의 열정은 공중파방송을 타고 전국에 알려졌다. 방송 다음 날 경기도 안양시에서 연락이 왔다. 쓰레기소각장에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싶다는 것이다. 강원도 춘천 마임축제에, 서울시 하이서울페스티벌에 그의 작품이 우뚝 섰다. 작품활동 시작 1년 새 벌어진 일들이다.

세계 첫 정크아트갤러리 설립

그의 활동이 왕성해 지면서 비좁은 장소는 걸림돌이 됐다. 그래서 옮긴 곳이 음성읍 용산리 가섭산 기슭에 자리잡은 지금의 그곳이다. 세계 최초 정크아트갤러리를 세운 것이다.

정크아트(주)가 설립되면서 그의 작품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보은군 펀파크에 그의 전시장이 별도 운영되고 있다. 전남 함평군 자연생태공원 진입로에, 대전시에, 서울 청계천에, 제주도 펀테마파크 등에 그의 작품은 날개를 치고 있다. 현재 그가 보유하고 있는 작품만도 6000여개에 이른다. 그는 명성은 전 세계에 퍼졌다. 중국 베이징 라이브탱크갤러리에 초청 받았다. 독일 쾰른 세계카메라엑스포 등에 전시됐다.

움직이는 로봇 탄생

그의 작품은 고물형태를 그대로 유지하며 만들어지는 것과 어떤 형태를 정해놓고 고물을 재조명하는 것 등 두가지 형태로 이뤄진다.

그의 작품 중 2m30cm에 이르는 '에어리언'은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작품이다. 총 400kg에 이르는 이 작품은 상체만도 100kg다. 상체 작업 중 떨어져 압사 직전에 구출돼 생명을 지킬 수 있었기에 더 기억에 남는다. 그의 작품은 초등학교 4학년 미술교과서에도 소개되고 있다. 영동대학교에 이어 유원대 석좌교수인 그는 감성로봇과목 강의를 하고 있다. 그의 예술세계는 계속되고 있다. 새로운 개념의 예술장르를 개척한 그는 재미있고 동작이 있는 움직이는 로봇을 탄생시켰다. 경제논리를 떠난 '생각하는 사람'하면 로뎅이듯 그만의 작품을 꿈꾸고 있다.

버려지는 폐기물을 누구나 감동하는 예술작품으로 변화시키는 정크아트. 그 중심에 음성이 낳은 오대호 작가가 서 있다. 이 순간에도 가섭산 기슭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작품들이 세계인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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