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기 주 전 음성군 공무원
김 기 주 전 음성군 공무원
  • 음성자치신문
  • 승인 2017.12.14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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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사회 만들고 싶어요”
▲자원봉사로 지역을 변화시키는 김기주 하얀머리 행복설계사가 사회복지시설 이용자인 어르신들께 펼치는 링마술을 선보이고 있다.
▲자원봉사로 지역을 변화시키는 김기주 하얀머리 행복설계사가 사회복지시설 이용자인 어르신들께 펼치는 링마술을 선보이고 있다.


34년 공직생활 은퇴 후 행복설계사로 나서
사진촬영·웃음치료 등 2000시간 봉사 꿈

행복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던지는 질문이지만 명쾌한 해답을 얻기란 쉽지 않다. 행복은 개인의 주관과 가치관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추상적 개념의 행복을 제쳐두고라도 사전에서 말하는 행복이란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를 말한다. 그 행복을 전하는 특별한 분이 계신다. 첫 만남에서 건낸 그의 명함이 독특하다. '하얀머리 행복설계사, 김기주'. 지난 34년 간 공직자로서 헌신하다 이젠 행복을 설계하는 행복설계사로 지역을 변화시키고 있다. 그의 행복한 인생여정을 시작한다.

마을 이장으로 헌신한 父…
'공적비'

소백산 자락을 타고 우뚝 솟아있는 명산 중에 명산 금수산. 그 산을 끼고 도는 남한강 줄기에 자리잡은 아름다운 마을 충북 제천 수산면. 김기주 행복설계사가 태어난 곳이다. 1995년 그의 가족들은 조상의 묘를 지키기 위해 생극면으로 이사했다. 김 설계사와 음성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의 아버지는 담배와 인삼농사를 주로 했다. 아버지는 매사 불의를 참지 못하는 의리있는 엄격한 성격을 지니셨다. 생극 신양리에서 오랫동안 이장으로서 마을을 위해 봉사했다. 그의 공로가 인정돼 역대 면장들의 공적비가 세워진 곳에 이장으로선 유일하게 공적비를 세워 그의 공로를 기리고 있다.

3번의 죽음 문턱서 구사일생

김 설계사는 생극초와 무극중학교를 거쳐 충주고와 충주대(현 한국교통대)를 졸업했다. 부인 남정자(65) 여사 사이에 1남1녀를 두고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일이다. 육사 진학에 실패한 그는 육군 항공준사관에 지원, 군 조종사를 꿈꿨다. 교육 종료 3일을 남기고 정찰기 조종을 하다가 그만 추락하고 말았다. 비행기는 불에 타 완전 소진됐지만 그는 화마에서 살아났다. 그의 삶이 두 번째 죽음에서 다시 시작된 셈이다. 이렇게 군 전역 후 교육행정직 시험을 준비하던 때이다. 1974년 1월 29일. 아버지의 심부름을 가다가 대형 트럭에 부딪히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72시간 동안 산 사람이 아니였다. 한달이 지나서야 의식을 되찾았다. 죽음의 문턱을 세 번 다녀온 것이다.

공직자 삶

구사일생 한 그는 교육행정직에서 일반행정직 시험으로 선회하고 퇴원 3개월만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해 9월 5일자로 음성군 공무원으로 정식 발령을 받았다. 그의 첫 발령지인 생극면에서 공직의 삶은 시작됐다. 농산과, 건설과, 대소면장, 생극면장 등 위민행정에 그가 거치지 않은 부서는 없다. 34년을 지역의 발전과 주민을 위해 헌신한 그는 자리보전보다는 후배들을 위해 지난 2009년 7월 부이사관으로 명예퇴직 했다.

자원봉사자로 왕성한 활동

그의 재능은 다양하다. 지인의 권유로 취미삼아 배우기 시작한 사진촬영이 전문가 수준이다. 군청 사진동호회와 설성포커스 회장을 맡기도 한 그는 음성품바축제 사진촬영대회 개최와 음성청결고추축제 포토제닉상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재능은 장애인들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그는 매주 화요일 음성군장애인복지관에서 사진촬영기법을 강의한다.

그는 웃음치료사이기도 하다. 음성군자원봉사센터 함박웃음봉사단과 함께 음성군노인복지관, 경로당, 요양원, 보건진료소 등을 찾아 웃음치료 봉사를 하고 있다.

김설계사는 “퇴직 직전 은퇴설계교육을 받던 중 강사님께서 강의 시작 전 간단한 마술을 선보였다. 그 모습이 참 좋아보였다”며 “작년에 센터에서 마술교육이 있다고 해 그 때 강사님이 생각나 교육에 참여했다. 이후 인터넷을 활용,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수백만 원을 들여 마술도구를 직접 구입하고 있다”며 단순 자원봉사가 아닌 꾸준한 자기계발을 이어가고 있다.

김 설계사는 학생들이 자원봉사에 나서기 전 기본적 소양을 갖추기 위한 자원봉사 기초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사후 새 생명을 위해 장기기증 서약도 마쳤다.
그는 “은퇴 후 집에서 TV나 보고 경로당에 있으면 쉬 늙는다. 수지침, 건강체조, 풍선아트 등도 배웠다. 중국어도 배우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삶의 활력이 되고 있다”며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자원봉사 2000시간 이룰 터

그의 봉사활동은 3년간 이어지고 있다. 올해만도 그의 봉사활동은 634시간에 이른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2000시간을 채우고 싶어 한다.

김 설계사는 “살아가면서 나만 위한 것보다 기술과 재주를 이웃과 함께하고, 힘이 될 때까지 스스로 남을 도울 수 있는 봉사참여는 100세 인생에서 은퇴자들이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며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 은퇴자들께서는 자원봉사활동에 겁내지 말고 적극 참여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임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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