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창 희 요양보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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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성자치신문
  • 승인 2017.12.2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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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날까지 함께 하리다” … 66년 노부부의 사랑이야기
▲ 젊은 세대에게 교훈으로 다가오는 노부부의 사랑이야기 주인공인 이창희·조순형 부부가 카메라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 젊은 세대에게 교훈으로 다가오는 노부부의 사랑이야기 주인공인 이창희·조순형 부부가 카메라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었다.


80세 역대 최고령자 요양보호사 자격시험 합격
위암·뇌졸중·파키슨병 앓는 아내 16년 동안 간호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결혼식에서 신랑·신부가 서로에게 백년해로를 맺는 언약의 말이다.

하지만 평생을 함께하는 부부는 그리 많지 않다.

금왕읍 조그마한 농촌마을 유촌리. 뇌졸증으로 쓰러진 아내를 돌보며 66년 간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가는 노부부가 있다. 주인공은 이창희(84)·조순형 부부다. 성격이 맞지 않다며 쉽게 이혼하는 요즘 부부들에게 노부부의 사랑이야기는 신선함을 넘어 신기하기조차 하다. 이들 부부의 삶속으로 들어가 본다.

평생을 농부로 살아온 삶
맹동초교와 무극중학교를 졸업한 이창희 할아버지는 나이 18세에 한 동네 친구인 조순형 할머니와 결혼했다. 자녀로는 3남1녀를 두고 있다. 그의 나이 21세. 대한민국 남자로서 병역의 의무는 필수다. 1월에 태어난 딸아이와 사랑하는 아내를 남겨두고 그해 4월에 입대했다. 1년 만에 휴가를 받고 집에 돌아왔지만 딸아이는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군 전역 후 본격적인 농사일에 들어간 이 할아버지 부부는 담배농사를 시작했다. 건조실을 2채나 가지고 있을 정도로 꽤 큰 농사였다. 이후 고추농사로 바꿔 진천 덕산에서 일꾼을 데려올 정도다. '이창희 고추'하면 서울 가락동시장에서 알아줄 정도로 고품질 이였다. 경매에 들어가기도 전에 상인들에 의해 팔려 나갔다.

계속된 아내의 질병
그러던 2001년 3월, 이들 부부 68세 되던 해 금강산 여행을 다녀왔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막내아들이 회사에서 포상으로 받은 여행상품권이다. 이들 부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여행이 된 셈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부부는 곧바로 일터로 향했다. 고춧밭에 거름을 주는데 아내 조 할머니께서 갑자기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위암이였다. 수술은 성공적이였다. 5년만 버티면 완치된단다. 음식을 조절하며 요양에 들어갔다.

아뿔사! 2년 뒤 조 할머니가 전화를 받던 중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뇌졸중이다. 한달을 병원에 입원했다. 이후 집으로 돌아와 금왕읍 소재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으며 재활에 나섰다. 그러던 어느 날,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손발이 제 맘대로 움직인다. 파키슨병 이였다.

아내 간호 위해 요양보호사 도전
거동조차 힘든 아내의 간호를 위해 이 할아버지가 나섰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필요했다. “나 혼자 편해선 안 되겠다. 자격증을 따서 아내를 돌봐야 겠다” 그리고 찾아간 곳이 금왕읍 소재 다사랑요양보호사교육원이다. 이때 그의 나이 80세. 하지만 이 할아버지는 교육원으로부터 등록을 거부당했다.

“'돌봄을 받아야 할 분이 무슨 시험이냐'며 거절하더군. 명함만 가지고 돌아왔지. 저녁에 다시 전화했지. 원장님께서 적은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후회하지 않겠냐고 묻더군.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랬더니 하시라고 하더군” 이렇게 요양보호사 자격시험 준비는 시작됐다. 2013년 7월 13일. 드디어 시험날이다. 청주로 갔다. 시험장에 들어서니 “시험 감독관께서 몇 살이냐고 묻더군. 나이를 말했더니 크게 웃더군. 시험장엔 모두 여자들뿐이고 남자라곤 나 혼자였어. 시험을 치르고 났는데 합격할 것이라는 확신이 왔지”하며 크게 웃었다.

죽는 날까지...

이 할아버지는 “아내를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뿐이다”며 인터뷰 내내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내가 성질이 급하고 톡 쏘는 말투 때문에 핀잔을 많이 들었어. 고치려고 해도 잘 안되더군. 하지만 할머니(아내)는 성격이 온순해. 천상여자지”

그는 이어 “세상이 각박해졌어. 백년해로 약속하고 신랑신부 출발하지만 좀 살다보면 힘들 때도 있는데 그걸 못 참고 이혼한다. 이혼이니 졸혼이니 하는데 천하에 몹쓸 것이다. 맺어진 인연이면 파뿌리 될 때까지 서로 이해하며 보둠아 주고 토닥거리며 잘 살아야 한다”며 힘줘 말했다.

이 할아버지는 말을 이었다. “자식들은 나 힘들다고 요양원에 보내자고 해. (하지만)여태 고생시키고선 늙고 병들었다고 어떻게 요양원에 보낼 수 있겠는가. 나도 혼자 있으면 고독하지만 아픈 부인이지만 옆에 있는 게 좋다. 서로 대화도 나누고 몸 좀 편하자고 보낼 순 없다. 내 몸이 할 수 있을 때까지 돌볼 것이다. 죽는 날까지 함께 할 것이다”

이런 그의 아내사랑, 환자 돌봄은 자녀들에겐 산교육이 됐다. 큰 아들 부부는 요양보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대전에 사는 딸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요양보호사 가족이다.

66년 결혼생활 중 16년을 병상에 있는 아내를 돌보며 살아온 이창희 할아버지. 그의 끝없는 아내사랑 이야기가 젊은 부부들에게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임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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