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순 서울성북경찰서장
이경순 서울성북경찰서장
  • 이상훈 대표
  • 승인 2013.08.30 1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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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일이라면 언제든 발벗고 나서 최선을 다해 도울것”


학 력
- 생극초 졸업, 무극중 졸업
- 서울환일고 졸업, 성균관대 졸업
- 독일 Mannheim대 유학 (범죄학)
- 한세대학교 경찰법무대학원 수료
(경찰학 석사)
- 단국대학교 대학원 행정학과
(박사과정 수료)

경 력
- 1977 순경, 동대문경찰서
- 1980 경장, 동대문경찰서
- 1984 경사, 치안본부 외사과
- 1986 경위, 독일 Mannheim대학
국비유학, 경찰청 외사3과
- 1992 경감, 충북영동·옥천경찰서
방범과장, 경찰청 외사3과
- 1996 경정, 독일 연방내무부 파견,
기동단 경비과장, 강동경찰서
수사과장, 서울지방경찰청 외사3계장
- 2005 총경, 장흥·음성경찰서장,
경찰청 교육·생활질서·보안2과장
- 2009. 3 서울성북경찰서장


이경순 서울성북경찰서장은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는 인물이다. 지난 1977년 순경으로 입직해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누구도 따라갈 수 없는 자신만의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담금질해 온 인물이다. 경찰로서는 빈틈없이 꼼꼼하고 진취적인 인물이지만 또한 이면에 내재한 그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모는 만나는 이를 유쾌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자신이 경찰이어서, 사람을 도울 수 있어서 감사하다는 이 서장을 만나 그가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 온 고향의 풍경과 동경을 들어 보았다.

Q 경찰이라는 특수한 분야에 입문하신 계기를 여쭤보고 싶은데요.
A 고향인 음성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꿈을 펼쳐보고자 상경해 학업에 몰두하던 당시 청계천 주변에서 한창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할 청소년들이 앵벌이를 하면서 착취 당하는 힘겨운 생활을 보게 되었습니다. 평소 경찰관은 엄하고 무서운 줄로만 알았는데 그들을 따뜻하게 보살펴주는 한 경찰관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언가 도움을 주어 새로운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작은 힘을 보태기 위한 직업으로 경찰이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국가에 봉사할 수 있는 직업이라는 점에 더욱 매력을 느껴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Q 경찰이 되신 걸 후회해 본 적은 없으십니까?
A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는 일념 하에 30여 년간 경찰관으로 근무를 해왔기 때문에 후회하기 보다는 이 길을 걸어온 것에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경찰조직의 90% 이상이 순경부터 입직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가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 많은 경찰 후배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다는 사실에 자긍심을 느낍니다.

Q 고향인 음성에서 근무할 당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A 제가 음성서장으로 근무할 때, 인삼농가들이 애써 재배한 인삼을 도둑맞아 허탈해 하고 있는 상황을 알고 인삼농가 주변의 순찰활동을 강화하고, 절도수법, 범죄현장의 유류품 자료분석을 통해 절도범의 신속한 검거 및 예방활동으로 지역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여건을 조성한 것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이와 같이 제 힘으로 고향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경찰관이라는 직업에 많은 자부심을 가졌었습니다.

Q 고향인 음성에서 보낸 유년시절 이야기를 좀 해 주시지요.
A 제가 태어난 곳은 음성군 금왕읍 호산리입니다. 생극초등학교까지 십리 이상을 걸어 다녔고, 중학교는 무극중학교까지 걸어서 다녔기 때문에 어린 나이에 힘들었지만, 그 길을 오가며 친구들과 들과 숲에서 즐거운 추억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특히, 당시에는 생극초등학교에 등교하려면 웅천을 건너야했는데, 비가 많이 오면 하천물이 불어 뚝방 건너쪽에 등교하지 않아도 된다는 빨간 깃발이 꽂히고 그것을 보고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면서 계곡 등을 다니며 개구리를 잡고 산딸기를 실컷 따먹었던 생각이 납니다. 친구들과 함께 했던 이런 추억이 있어서 먼 등굣길이 힘들지 않았지요. 게다가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레 체력이 길러져 어려운 환경을 딛고 오늘의 제가 있게 된 원동력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Q 고향에는 가끔 내려오시나요?
A 제가 고향을 떠나 있는 동안에도 발전하는 고향의 모습을 관심과 애착을 가지고 항상 지켜보았습니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었는데, 고향의 소중함이 해가 갈수록 깊어지고 있어 고향사람들의 애경사, 모교행사, 지역행사 등에 대해 가급적 참석해 고향의 정서를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Q 고향 친구들은 자주 만나시는지?
A 고향 친구들 중 상경해 직장에 다니는 친구들은 자주 만날 기회가 있습니다만, 고향에 남아 지역을 지키고 있는 친구들은 자주 만나지는 못합니다. 그렇지만 어린시절 저의 성장의 밑거름이 되고, 저에게 많은 도움을 준 친구들로 제가 돌아갈 고향을 지켜왔고, 함께 했던 추억들이 있기에 떠올리기만 해도 미소를 머금게 하는 안식처같은 친구들입니다.

Q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꼽으신다면?
A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사랑으로 저를 이렇게 키워주신 부모님을 가장 존경하고, 늦은 무과급제에 갖은 모략과 시련 속에서도 오로지 애국의 마음으로 나라를 지켜낸 이순신 장군이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흑인으로서 어린 시절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당당히 미국 대통령이 된 오바마 대통령의 행보에서도 배울점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Q 특별한 취미나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으시다면 소개해 주시지요.

A 시간이 허락되는 경우 가까운 북한산에 올라 자연의 위대함 속에 한 인간에 불과한 제 자신을 느끼며 한번쯤 지나온 삶을 되새겨보기도 합니다. 또한 스티븐잡스 같은 혁신적 인물들에 대한 저서들을 보고 그들 삶의 치열함과 열정을 배우며 업무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곤 합니다.

Q 음성서에 근무하실 때 학생들을 대상으로 청소년범죄 예방에 관한 강의도 수차례 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청소년 범죄의 심각성과 그 해결책은 무어라 생각하시는지요?
A 인터넷, 케이블TV 등 미디어 매체의 다양화로 음란물, 폭력물에 접하는 기회가 많아져 청소년들의 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그 연령 또한 10대 초반으로 저연령화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청소년 범죄는 호기심과 판단력 부족으로 죄의식 없이 발생해 모방범죄를 양산한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인데, 청소년기에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도록 도움을 주고, 법률위반행위에 대한 교육과 유해환경으로부터 안전한 청소년 환경을 조성하는 기성세대들의 노력이 조화될 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얼마 전 서울성북경찰서에서 우리고장 농산물인 음성 다올찬 쌀 팔아주기 행사를 주관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고향 사랑을 몸소 실천하고 계시는데 이런 행사를 마련하게 된 계기와 직원들의 반응,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일을 계속하실 의향이 있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A 경찰청에서는 '농가지원을 위한 경찰관 1인당 쌀 1포대 구매운동'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저희 성북서에서는 음성 쌀을 구매했는데 우수한 품질의 쌀을 구입한 직원들은 밥맛 좋은 쌀을 저렴하게 구매함으로써, 어려운 시기에 농가를 지원할 수 있었다며 기쁜 마음으로 구매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다산 선생은 목민심서에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하여, 농촌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듯이, 농촌은 우리 모두의 마음의 고향으로, 농촌이 부강해져야 도시도 함께 근본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고향사랑의 마음으로 이를 실천해 나가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품질좋은 고향농산물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도록 하겠습니다.

Q 퇴임 후 고향에 내려올 생각은 없으신가요?
A 현재는 수도 서울에서 치안업무를 맡고 있으나 언제나 고향을 위해 어떤 봉사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으며, 가능하다면 고향에서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을 하고 싶습니다.

Q 고향의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지면을 빌어 해 주시지요.
A 저는 경찰조직에 순경으로 입직하여 조직내 경쟁에서 항상 앞서기 위해 “꿈꾸는 자는 꿈을 닮아가며 그 꿈은 마침내 이루어진다”는 생각을 갖고 열심히 노력하여 왔습니다. 이는 극한의 난관을 돌파해야만 약진의 기회가 온다는 의미로서 어려운 시기일수록 주어진 환경을 극복해야만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다고 봅니다. 최근 힘든 주변환경으로 자신의 삶을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이나 농촌환경의 열악함을 탓하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현재 처해진 상황을 이겨내려는 노력을 한다면,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가 찾아오고, 그 기회를 잘 활용하여 꿈과 희망을 펼쳐나가다보면 보람된 삶도 펼쳐지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음성군민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제가 태어난 고향에서 여러 어르신들을 가까이 모시고 고향을 묵묵히 지켜와 주신 주민들에게 경찰서장으로서 작은 힘이나 보탤 수 있었던 것은 제 공직생활의 가장 영광된 시절이었습니다. 고향인 음성서장으로 재임할 때 보내주셨던 고향주민들의 따뜻한 성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당시에는 보람도 많이 느꼈지만 고향주민들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였다는 죄송함과 아쉬움이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의 고향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누구 못지않다고 자부하고 있으며 지역주민들이 저를 필요로 할 때 정성을 다해 성심껏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저 자신을 끊임없이 다듬고 가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끝으로 2010년 庚寅年에는 음성군민 모두가 하시는 일마다 소원성취하시고 항상 행복하고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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